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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좋다
256회
아버지의 이름으로 배우 박준규!
■ 유쾌함과 묵직함이 공존하는 배우 박준규를 만나다. 카리스마 넘치는 묵직한 연기부터 맛깔 나는 감초 연기까지 수많은 작품에서 웃음 과 감동을 선사하는 배우 박준규! 연기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그는 어느새 30년째 연기 외길인생을 걷고 있다. “벽이 없는 배우입니다. 항상 열려있어요. 안팎으로 좋은 배우이자 또 좋은 친구이자 또 후배들한테 좋은 형입니다.” - 김상중 인터뷰 中 “굉장히 성격파라고 얘기할 수도 있고 연기파. 개성적인 배우라는 생각이 들어요.” - 하정우 인터뷰 中 배우 고 박노식의 아들로 처음부터 화려했을 것만 같은 그의 연기 인생은 마냥 순탄 치만은 않았다. 15년이 넘는 무명시절과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닥친 경제위기로 반 지하 주택에서의 생활. 그리고 '박노식의 아들'이라는 수식어를 없애기 위해 애써온 시간. 대중에게 '배우 박준규'로 인정받기까지 인고의 시간을 겪은 그의 연기 인생이 에서 공개된다. ■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가장의 무게를 짊어지다. 그의 이름 앞엔 '박노식의 아들' 혹은 '쌍칼'이란 수식어가 긴 시간 따라다녔다. 지금 은 '배우 박준규'로 당당히 인정받는 그이지만 처음부터 박준규의 꿈은 배우가 아니 었다. 60~70년대 한국 영화계를 주름잡았던 영화배우 박노식이 아버지였기에 그의 어린 시절 기억 속 아버지는 늘 바쁘기만 했다. 일만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박 준규는 '나는 절대 배우는 안 하리라' 마음먹었다. “제 생일날 옛날 명동에 있었던 코스모스 백화점에 아버지가 나 선물 사주러 가셨는데 아줌마들 등쌀에 선물 못 사갖고 나왔어요. 아줌마들이 계속 아버지한테 사인 해 달라 그러고 막 와서 만지고 그러시더라고. 그래서 끝내 못 사갖고 나와 갖고 집에도 잘 안 계시고... 어린 나이 때는 저는 영화배우 안 한다 그랬죠. 이건 할 일이 아닌가 보다 이렇게 바쁘고 이렇게 힘들어갖고 어떻게 해 그래서 싫어했었는데 때가 되니까 저도 하게 되더라고요.” - 박준규 인터뷰 中 하지만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끼와 재능을 숨길 수 없던 박준규. 안정된 직장을 포기 하고 스물다섯의 늦은 나이에 배우가 되었다. 1988년 영화 '카멜레온의 시'로 데뷔한 박준규는 영화가 개봉하면 아버지처럼 스타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영화는 흥행에 실패하고 박준규의 배우 인생은 힘겨운 길을 걷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 이민 생활 당시, 아버지 박노식은 사업에 실패하며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졌다. 아버 지는 한국으로 돌아와 재기를 꿈꿨지만 이후 병을 얻게 됐고, 아들 박준규에게 남겨 준 재산은 단 한 푼도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네가 아버지 돈 다 썼지 이래요 저한테 근데 굉장히 잘못 알고 계신 거고 아버지가 영화판에 계시면서 검열도 너무 심했고 이민을 가자고 하셨는데 사업에 실패하신 거죠 그렇게 사시다가 병 앓으시고 입원비 하시고 돈 땡전 한 품 안 주시고 혼자 다 쓰시고 가셨어 멋쟁이지 한마디로” - 박준규 인터뷰 中 “반지하 집 얻을 돈 밖에 안 남더라고요. 한번은 한여름인데 새벽에 막 무슨 소리가 나는 거예요. 그래서 밖에 나가봤더니 발목 정도가 잠길 정도로 마루에 물이 찬 거예요. 눈물이 나려고 하는데 남편을 보니까 제가 울면 안 되겠더라고요. 내가 여기서 울면 이 사람이 정말 속상하겠구나.” - 아내 진송아 인터뷰 中 무명시절 반지하 생활을 하면서 박준규는 작품을 가리지 않고 연기했다. 그가 쉬지 않고 일해 온 이유는 바로 가족들 때문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7년이 지난 2002년. 박준규는 자신의 배우 인생을 바꿔줄 작품 을 만난다. 바로 드라마 '야인시대'이다. 인생 캐릭터 '쌍칼'을 만나 남우조연상이란 생애 첫 연기상의 쾌거를 이룬다. 당시, 반지하에서 남편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렸 던 그의 아내. 그때부터 가족의 고생도 끝이 났다. 유산 대신 재능을 물려주고 떠난 아버지 박노식을 대신해 가장으로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쉴 틈 없이 연기 인생을 달려온 박준규의 이야기를 에서 만나보자. ■ 아버지가 되고 나서 아버지를 이해하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추억이 많지 않기 때문인지 박준규는 두 아들에게만큼은 친 구 같은 아버지가 되고자 한다. 쉬는 날이면 함께 목욕탕을 가는 것도, 자기 전 술 한 잔 같이하며 연애상담을 해주는 것도, 틈틈이 삼부자가 소소한 데이트를 즐기는 것 도 두 아들에게 좋은 추억을 선사해주고픈 바람 때문이다. “제가 아버지 임종을 못 봤어요. 부산에서 아가씨와 건달들 공연이 있었는데 공연 가기 전에 아버지한테 한번 여쭤봤습니다. 병상에 누워계시는데 상태가 좀 안 좋으신 거 같다는 얘기를 들어서 아버지한테 아버지 이번에 부산 공연인데 안가고 아버지 옆을 지키겠습니다. 그랬더니 욕을 먹었어요. 이놈아 배우가 무대에 가 있어야지 내 옆에서 네가 있다고 내가 낫는 것도 아니고 공연하러 가라고.” - 박준규 인터뷰 中 임종 때까지도 아들을 무대로 내몰았던 아버지 박노식. 배우의 인생이 쉽지 않은 길 임을 아들 박준규에게 아버지 박노식은 그렇게 알려준 것이다. 박준규는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 그의 두 아들도 배우의 길을 걷겠다 고 한다. 아버지가 그랬듯 박준규도 두 아들에게 똑같은 가르침을 주려 한다. 스스 로 배우의 길은 개척해가길 바라되 아버지로서는 두 아들에게 따뜻한 안식처가 되어 주고 싶은 박준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 박준규의 이야기는 일요일 오전 8시 에서 만나볼 수 있다.
2018.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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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 그땐 그랬지
55회
1. 하면 된다! 세계 신기록, '기네스' 도전기
2. '한국 영화의 대부들 장동휘,박노식,허장강' 미리보기
▶ 하면 된다! 세계 신기록, '기네스' 도전기 잦은 부상과 힘겨운 난관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기네스를 향한 도전! 세계 기록을 위해 온몸을 내던진 사람들의 험난한 기네스 도전기를 만나본다! ▶ '한국 영화의 대부들 장동휘,박노식,허장강' 미리보기 험난한 기네스 도전기를 만나본다! 미남배우가 아니어도 좋다! 영화계에 반란을 일으킨 세 배우! 터프가이 '장동휘', 정감가는 '박노식' 그리고 천의 얼굴 '허장강' 까지! 미남배우는 아니지만 당당히 1960년대 한국 영화계의 황금기를 이끈 개성파 배우 3인방을 만나본다!
2015.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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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투의 베란다쇼
66회
이미테이션 연예인 1부
이미테이션 연예인 제 1탄! 월드스타 싸이의 복사판! '칸에 나타난 가짜 싸이'의 충격적인 실체 대공개! 유튜브 조회수만 무려 16만뷰! '강남스타일' 하나로 월드스타가 된 싸이! 전 세계인 의 주목을 받은 만큼 가짜도 각국에서 등장했다! 중국의 가짜 싸이 '중싸', 호주의 '호싸', 국내에선 '싸요'라는 이름의 닮은꼴까지 등장했는데. 그런데, 칸에서도 가짜 싸이가 나타났다? 헤어스타일부터 체형까지 닮아도 너무 닮 은 '복사판 수준'의 가짜 싸이에 전 세계가 감쪽같이 속았다. 그는 칸 영화제의 VIP 파티에까지 참석해 공짜 술을 마셨고, 유명 헐리웃 스타들과 인증샷까지 찍는 등 진 짜 싸이 행세를 했다는데. 그를 두고 각종 매체에선 '중국인이다', '무전취식하는 파 렴치한'이라며 논란이 벌어졌고, 정찬우는 '싸이의 잃어버린 친형제가 아니냐'며 추 측해 보기도 했다. 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남자, '칸의 가짜 싸이'! 베란다쇼 제작진이 직접 프랑스 로 건너가 그를 만났다. 알고 보니 가짜 싸이! 4살 때 프랑스로 입양된 한국계 프랑스 인 '드니까레'! 잘나가던 패션회사 컨설턴트에서 가짜 싸이가 된 기막힌 사연이 있었 는데. 칸의 파티에도 초청을 받아 간 것이었다고. 선글라스를 벗은 드니까레씨의 '진 짜 얼굴'과 가짜 싸이로 변신하는 전 과정을 베란다쇼에 독점! '최초'로 공개했다! 그리고, 국내의 가짜 싸이 '싸요'에게 직접 전수 받아 MC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든 박지훈 변호사의 '가짜 싸이 되기' 프로젝트! 보기만 해도 애처로운 '싸예 도전기'가 함께 펼쳐진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외모!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성대모사가 대세인 시대! 과연 베란다쇼 MC들의 성대모사 실력은? 이승엽 선수에 완벽하게 빙의된 박지훈 변호사의 놀라운 성대모사와 '향숙이 예쁘 다'로 유명한 배우 박노식과의 완벽 도플갱어 인증한 서민 교수! 그리고 컬투 정찬우 의 결정타! 마이크 하나로 '8만 5천 톤 항공모함의 뱃고동 소리' 완벽 재현! 베란다쇼 MC들의 성대/음향 모사 전격 배틀! 6월 24일 월요일 밤 9시 30분, 에서 확인하세요!
2013.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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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은 날
1356회
결혼 20주년을 맞은 박준규, 진송아 부부! 결혼생활 20년 총정리!
결혼 20주년을 맞은 박준규, 진송아 부부! 결혼생활 20년 총정리! 숨이 멎을 듯한 카리스마 눈빛, 박력 넘치는 액션 연기를 선보이며 길었던 10년 무명을 딛고 국민배우로서 우뚝 선 박준규!! 드라마에 이어 재치만점 입담, 폭풍 끼로 예능까지 완벽 점령~ 이렇듯 온 국민의 사랑은 받는 팔색조 배우 박준규가 이번에 두 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20주년을 맞이해 두 아들과 함께 준비한 리마인드 웨딩! 큰 아들 종찬이의 감동의 축가 속에 치러진 리얼 감동 웨딩 스토리가 지금 시작됩니다~ '쌍칼 박준규'는 진송아가 만든 걸작이다?! '쌍칼 박준규'가 탄생한 비하인드 스토리! 박준규가'야인시대'쌍칼 역할을 거부할 뻔 한 사연은?! 이미 드라마'왕초'에서 보여준 쌍칼의 이미지 때문에 출연을 고사했던 박준규! 그러나 박준규를 설득해~ 야인시대에 출연하게 만든 아내 진송아의 남다른 예지력?! 쌍칼 역으로 10년 무명생활을 완벽 벗어나 대중에게 이름 석 자를 알리며 국민배우로 급부상한 박준규! 감동의 리마인드 웨딩! 남편은 울고~ 아내는 토닥토닥?! 20년 간, 꿈을 접고 자신의 뒷바라지만 해 온 아내를 위해 두 아들 종찬, 종혁이와 결혼 20주년 리마인드 웨딩을 준비한 박준규! 엄숙한 주례와 아름다운 축가 반주에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고... 큰 아들 종찬이의 감동적인 축가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던 박준규~ 그런 남편의 어깨를 토닥이는 진송아의 엄마 포스! 20주년 맞은 박준규 부부의 리마인드 웨딩 풀 스토리~ 대공개!!! 며느리바보 故박노식의 못 말리는 며느리 사랑~ 대한민국 최고의 유명 영화배우 故박노식!!! 며느리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고 싶어 했던 자상한 시아버지 박노식의 귀걸이 그림 선물 사연! 여자는 향기가 있어야 한다?! 향수선물까지... 며느리에겐 한없이 자상하고 살가웠던 故박노식을 추억한다! “살찐 송아가 제일~ 좋아!”애처가 박준규의 못 말리는 아내 사랑~ 녹화 중 토크는 뒷전! 모니터에 비친 아내의 모습에 홀딱 빠져 MC 질문도 놓치고 만 아내 바보 박준규~ 살이 쪄도 좋아~ 7kg 증가한 아내에게 보내는 사랑의 눈빛!!! 두 아들의 축복 속에 이루어진 박준규, 진송아의 결혼 20주년 감동의 리마인드 웨딩 풀 스토리가 2월 10일 오전 9시 45분 에서 지금 시작됩니다!
2012.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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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스타
198회
1. 무릎 팍 도사 - 주진모
2. 라디오 스타 - 박준규,이루,이유
MC : 강호동, 유세윤, 올라이즈 밴드, 신정환, 윤종신, 김구라, 김국진 게스트 : 주진모,박준규,이루,이유 무릎 팍 도사 : 강호동 / 건방진 도사 : 유세윤 / 밴드 동자 : 올라이즈 밴드 화려함 뒤에 감춰진 배우의 무대 뒷모습을 밝힌다! 계속되는 주진모의 고민해결의 시간~! “도사님! 저 여자친구 좀 만들어주세요...”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 청년 주진모! 영화 촬영 당시, 세계스타 장쯔이와의 절친스토리~! 실패 없이 초스피드 스타가 된 그에게 닥쳐온 시련! '은퇴설'까지 나돌았던 지독한 슬럼프의 시간들~ 마침내 3년 6개월의 공백기 마무리하고~ 차곡차곡 쌓아지는 그의 명품 필모그래피~! 생애 한 번도 힘들다는 과감한 연기 시도를 두 번씩이나?! 영화 제작과정의 비하인드 스토리~! 떨리는 공개구혼과 명쾌한(?) 고민해결로 마무리되는 주진모의 인생 속으로 팍팍~!! DJ: 신정환, 윤종신, 김구라, 김국진 연예계에 종횡무진 활동 중인 연예인 2세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6,70년대 최고의 액션배우 박노식의 2세 박준규! '트로트 4대천왕'의 아들들, 이루&이유! 박준규의 곱상하고 부티나는 유년시절~ 그의 집엔 동물원이 있었다?! 이루와 이유! 트로트 주니어들의 전혀 다른 인생!! 다른 삶, 같은 고민으로 살아온 그들만의 고해성사! 라디오 스타에서 만나요! 제~발~ 11시 5분 수요일은 황금어장 보는 날.
2010.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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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대구 공방전
16회
메리대구공방전 16회
대구의 책 백발광녀전과 세도의 자서전이 발매되고, 세도의 사인회에 동원된 비단과 아이들은 짜증을 낸다. 대구는 메리네 집에 인사간다며 도진에게 넥타이를 빌려 달라 하고, 도진은 다정히 대구의 넥타이를 매준다. 성자는 반갑게 대구를 맞이하고, 도철은 대구에게 아직 사위가 아니니 맘 놓지 말라고 한다. 대구는 이번 책이 성공하면 메리와 결혼하게 해달라고 하지만 깜짝 놀란 메리는 결혼은 나중 문제라 말한다. 작가와의 대화 행사 세미나실로 들어선 대구는 예상보다 적게 모인 사람들을 보며놀란다. 장소가 바뀌었다는 서점 직원의 말에 다른 곳으로 간 대구는 메리와 많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메리는 대구에게 사람들에게 자신을 소개하지 않았다고 서운해 하며 창피하냐고 묻는다. 풍운이 준 노트북을 연 대구는 풍운이 남긴 동영상을 보게 되고, 대구를 찾아 헤매던 메리는 울고 있는 대구를 꼭 안아준다.
2007.07.05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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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다큐 사람이 좋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배우 박준규
오는 7일(일) 오전 8시에 방송되는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서 배우 박준규의 이야기가 공개된다. 때로는 카리스마 넘치는 묵직한 연기로, 때로는 맛깔 나는 감초 연기로 대중에게 사랑받는 배우 박준규. 사실 일주일에 10편의 영화를 찍을 정도로 바빴던 아버지(박노식)의 모습을 지켜본 어린 박준규는 “나는 절대 배우는 하지 않겠다” 굳게 다짐했다. 그런 그가 어쩌다 연기 인생 30년을 맞이하게 된 걸까? 전도유망한 뮤지컬 배우였던 박준규의 아내 진송아. 결혼 후 남편의 성공을 위해 그녀는 배우의 꿈을 과감히 포기했다. 그러나 남편의 무명생활은 15년이란 긴 시간 이어졌고, 남편의 뒤를 이어 배우를 하겠단 큰아들을 위해 또다시 뒷바라지를 시작했다. 평생 남편과 두 아들을 위해 헌신한 그녀에게 큰 시련이 찾아왔다. 바로 6년 전, 공황장애 판정을 받은 것이다. 강인한 아내이자 어머니인 진송아, 그녀의 눈물 속에는 과연 어떤 사연이 담겨져 있을까? 가족들이 휴지 두 칸을 쓰는 날엔 호통을 치는 박준규! 다른 건 몰라도 휴지만큼은 꼭 두 칸만 써야 한다는 철칙을 갖고 있다는데…그는 왜 그러는 것일까? 15년간의 긴 무명생활에도 배우를 포기하지 않았던 박준규의 사연이 방송에 담긴다. 1995년 지방 공연을 내려가야 했던 박준규는 공연을 포기하고 아버지 곁을 지키려 했지만 박노식은 “이놈아 배우가 무대에 가 있어야지 네가 있다고 내가 낫는 것도 아니니 공연하러 가라”고 호통을 치셨다. 배우라는 직업이 쉽지 않은 직업임을 박노식은 아들 스스로 깨닫길 바랐다. 그래서 하나뿐인 아들에게 늘 채찍질할 수밖에 없었다는데…. 이 시대의 아버지로 살아가는 배우 박준규의 가족 이야기는 오는 7일(일) 오전 8시 MBC ‘사람이 좋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문화연예
2018-01-05
뉴미디어뉴스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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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계의 거장' 촬영감독 서정민 씨 별세
한국영화계의 거장 촬영감독 서정민(본명 서정석) 씨가 7일 별세했다. 향년 81세. 고인은 1934년 인천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사진에 관심을 보였다. 고등학교시절에는 학교에 암실을 차려 촬영과 현상을 하며 사진을 익혔다. 필름 유제를 직접 개발하겠다는 생각으로 고려대 화학과에 입학해 4학년 때 우연히 선배의 친구인 영화감독의 추천으로 촬영부에 들어가면서 영화에 입문했다. 그는 촬영부에서 일하며 얻은 현장 지식에 영화의 이론공부를 결합해 노하우를 쌓은 뒤 1961년 임원직 감독의 '촌 오복이'를 통해 데뷔했다. 고인은 1960년대 이만희 감독과 콤비를 이뤄 '다이알 112를 돌려라'(1962),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검은 머리'(1964), '마의 계단'(1964), '7인의 여포로'(1965), '만추'(1966), '기적'(1967) 등의 촬영을 맡았다. 1970년대에는 임권택 감독과 '명동잔혹사'(1972), '증언'(1973), '낙동강은 흐르는가'(1976)를 찍었고, 1980년대에는 이장호 감독과 '바람불어 좋은 날'(1980), '바보선언'(1983), '무릎과 무릎사이'(1984) 등을 작업했다. 1990년대에는 김기덕 감독의 '야생동물 보호구역'(1997), '파란대문'(1998), '수취인불명'(2000)의 촬영을 맡는 등 시대마다 연출 부문 당대 최고의 감독과 함께 한국영화계를 풍미했다. 고인은 2000년대 들어서도 '리베라메'(2000), '몽정기'(2002),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여우 계단'(2003), '어린 신부'(2004), '몽정기2'(2005), '무방비도시'(2007) 등을 촬영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서 감독은 1964년 '돌아오지 않는 해병'으로 대종상 촬영상(신인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청룡영화상, 황금촬영상, 백상예술대상 등 각종 굵직한 시상식을 휩쓸었다. 그가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받은 상은 20건을 훌쩍 넘는다. 그는 1966년 김지미·허장강·박노식 등이 출연한 영화 '동대문시장 훈이엄마'를 연출하기도 했다. 영화는 가난하지만 성실하게 아들을 키우며 살아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린 드라마다. 조동관 한국영화촬영감독협회장은 "고인은 '빛의 마술사'로 한국영화계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장"이라면서 "현장에서 배우와 스태프들을 언제나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셨던 게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고인은 배우자 오청자 씨와 슬하에 4남을 뒀다. 빈소는 여의도 성모 장례식장(5호실)이며 발인은 9일 오전 9시다.
문화연예
2015-07-07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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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영롱한 주옥으로 남은 여배우 진도희
1970년대 충무로 은막 스타였던 여배우 고(故) 진도희(본명 김태야)가 사후 '주옥'(구술과 옥)으로 남았다. 진 씨의 외동딸인 정은정 씨는 29일 고인의 발인을 마친 뒤 유골을 주옥으로 제작했다고 밝혔다. 정 씨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어머니 생전 모습대로 청아하고 영롱한 주옥"이라면서 "고인께서 암 투병 환자였음에도 평소 몸에 대한 관리를 철저히 하셔서 최상급의 보석이 나왔다"고 전했다. 이어 "어머니 생전에 이런 장례 문화와 절차를 의논했다"며 "예쁜 크리스털 함에 보이도록 담아 집에 보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인은 1972년 배우였던 박노식의 영화감독 데뷔작인 '자크를 채워라'에 주연으로 캐스팅되면서 영화계에 입문했다. 이후 '대추격'(1972), '늑대들'(1972), '체포령'(1972), '일요일에 온 손님들'(1973), '원녀'(1973), '서울의 연인'(1973), '죽어서 말하는 연인'(1974)에 잇따라 주연을 맡아 영화배우의 입지를 굳혔다. 신성일·신일룡·신영일 등 당대 최고의 미남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서구적인 마스크와 훤칠한 외모로 당시 글래머 여배우라는 이미지를 남겼다. 왕성한 활동을 하던 고인은 당시 조흥은행 창업주의 직손인 정운익 씨와 열애로 은막을 떠났다. 이후 외식사업과 무역회사 중역으로 미국을 오가면서 성공한 사업가로 변신했다. 후일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미주 한국일보의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돼 문인의 길을 걸었고, '젖소부인'으로 유명해진 에로 전문 배우에게 예명을 도용당해 자신과 가족들이 고초를 겪기도 했다.
문화연예
2015-06-29
온라인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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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춘추시대 대표 여배우' 진도희 별세
여배우 춘추전국시대인 1970년대 초반 주연급 배우로 왕성한 활동을 했던 영화배우 진도희(본명 김태야)가 지난 26일 췌장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66세. 여기서 춘추전국시대는 1세대 트로이카 남정임·문희·윤정희와 2세대 트로이카정윤희·장미희·유지인 사이에 끼어 여배우들이 뚜렷한 선두주자 없이 비슷한 인기를 구가하던 시대를 말한다. 이 시절 고인과 함께 활약했던 여배우에는 나오미, 우연정, 최정민, 윤세희, 윤미라, 박지영, 윤연경, 오유경, 전영 등이 있다. 1949년 부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여고 시절 문학에 심취해 전국 문학 콩쿠르에서 상을 휩쓸었던 문학소녀였다. 고인은 중앙대의 전신이었던 서라벌 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하고 2년 뒤 동국대연극영화과로 편입했다. 동국대 재학 시절 교내 연극의 여주인공으로 뽑히면서 알게 된 국립극단장의 권유로 MBC 공채에 응시, '김경아'라는 예명으로 MBC 4기 탤런트가 됐다. 1972년 배우였던 박노식의 영화감독 데뷔작인 '자크를 채워라'에 주연으로 캐스팅되면서 영화배우에 입문했다. 이후 '대추격'(1972), '늑대들'(1972), '체포령'(1972), '일요일에 온 손님들'(1973), '원녀'(1973), '서울의 연인'(1973), '죽어서 말하는 연인'(1974)에 잇따라 주연을 맡아 영화배우의 입지를 굳혔다. 신성일·신일룡·신영일 등 당대 최고의 미남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서구적인 마스크와 훤칠한 외모로 당시 글래머 여배우라는 이미지를 남겼다. 1973년 이란 테헤란 국제영화제에 최하원 감독, 이병일 감독, 배우 남궁원과 함께 한국 여배우 대표로 참석해 팔레비 왕조의 파라 왕비를 알현하기도 했다. 이듬해인 1974년 제10회 백상예술대상에서는 신인여배우상을 거머쥐었다. 왕성한 활동을 하던 고인은 당시 조흥은행 창업주의 직손인 정운익 씨와 열애로 은막을 떠났다. 이후 외식사업과 무역회사 중역으로 미국을 오가면서 성공한 사업가로 변신했다.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미주 한국일보의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돼 문인의 길을 걷기도 했다. 미주 기독교 방송에서 클래식 라디오 진행도 맡았다. '젖소부인'으로 유명해진 에로 전문 배우에게 예명을 도용당해 자신과 가족들이 고초를 겪기도 했다. 부산에서 3선 의원을 보내고 헌정회 의장을 지낸 고 김승목 의원과 사촌지간이다. 슬하에 딸이 한 명 있다. 빈소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이며 입관 예배는 27일 오후 3시, 발인은 29일 오전 8시다. 장지는 서울 승화원이다.
문화연예
2015-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