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좋다
338회
스마일 어게인 배우 이재은
@ 80년대 워너비 어린이, 국민 아역 배우 이재은. 그때는 채 다 말 못 한 사연 주요 출연 작품만 드라마 34편, 영화 17편, 연극과 뮤지컬 등 무대 활동 13편! 중장년은 돼야 가능한 필모그래피를 지녔지만, 이제 막 사십 대에 들어선 배우 이재은(40세). 1984년 다섯 살에 우연히 참여한 '예쁜 어린이 선발대회'에서 3위로 입상한 후, CF모델로 처음 데뷔했다. 이어, 한글도 읽지 못하는 나이에 엄마가 불러주는 대사를 외워가며 연기를 시작한 그녀는 80년대 대표 어린이 영화 를 시작으로, 드라마 , 등 다수 작품에 출연해 깜찍한 연기를 선보여 대한민국 국민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당시 대한민국에 존재했던 아동복 브랜드 10개 모두에서 전담 모델로 활동했던 만큼 부모들의 워너비 어린이였던 이재은. 1999년, 스무 살이 돼서는 영화 를 통해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시도, 제20회 청룡영화제와 제37회 대종상영화제에서 신인여우상을 받으며 아역 이미지 탈피에 성공했고, 더불어 연기력까지 인정받았다. 이어 MBC 시트콤 과 드라마 에 출연하며 하이틴스타로 발돋움했고, 가수 활동까지 하는 등 전성기를 맞았는데…. 스물일곱 꽤 이른 나이에 돌연 결혼을 하면서 하이틴스타의 인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뒤늦게 알려진 이재은의 개인사는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바로 다섯 살 때부터 내내 연예 활동을 해서 가정 경제를 홀로 책임져왔다는 것. 영화 는 결과적으로 그녀에게 영예를 안겨준 작품이기는 하지만, 실은 집안의 빚을 갚기 위해 출연을 결정했다. 사람들의 냉담한 반응에 당시 어렸던 그녀는 상처가 컸고, 원치 않는 연기를 하지 않으려면 집에서 독립해야 한다고 여겼기에 결혼을 서둘렀다고 한다. 사실, 신문기자였던 그녀의 아버지 故 이정섭 씨는 폐결핵으로 직장에 다닐 수 없게 된 후, 경력이 단절됐다. 이후 가장으로 바로 서보려 갖은 노력을 했지만, 여러 차례 사기를 당했고, 본인 대신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딸에게 늘 미안해했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노출 강도가 높은 영화를 촬영해야 했을 때는 특히 마음 아파했다고 하는데…. 영화 찍을 때 재은이하고 둘이서 무지 울었거든요. 저도 안 시키고 싶은 걸 어쩔 수 없이 시켜야 하는 상황이었고요. 재은이 아버지도 미안하고 힘들어서 아마 어느 정도 충격을 받았던 것 같고, 그래서 돌아가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 어머니 조현숙 씨 인터뷰 中 생전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이재은의 활동 자료 파일에는 영화 관련 자료가 꼼꼼하게 스크랩되어 있었다. 뒤늦게 관련 스크랩을 발견한 이재은은 당시 아버지의 심정을 다시 헤아려 보는데…. 어머니와 함께 경기도의 한 추모관에 모셔져 있는 아버지를 찾아가는 길을 가 함께 한다. @ 3년간의 우울증을 극복,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도와준 엄마. 아역 이후로 최대의 전성기를 맞았을 때 결혼을 택했던 이재은. 그러나 결혼 11년 만인 지난 2017년, 갑작스레 이혼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통 소식이 없던 그녀가 올가을, 2년의 공백을 깨고 활동의 기지개를 켜고 있다. 라디오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하고, 함께 뮤지컬 무대에 섰던 동료들과 만나 동동주 한 잔에 회포를 풀기도 했는데…. 그동안 그녀가 소식을 알리지 않은 채 꼭꼭 숨어 지낸 이유가 있었다. 결혼 후, 삶을 바라보는 방식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결혼생활이 원만하지 못하자, 그녀는 우울증에 시달리게 됐다. 마음의 병 때문에 식욕을 조절하기 힘들어 점점 살이 쪘고 급기야 체중이 80kg에 육박. 고지혈증, 고혈압과 같은 비만성 질병으로 힘들었던 것은 물론, 한때 예쁜 외모로 주목받던 여배우였기 때문에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이 절망스러웠다고 한다. 우울증을 의심하면서도 혼자서만 앓았던 시간 5년, 끝내 극복할 수 없어 병원의 도움을 받았던 시간 3년. 거의 7~8년이란 긴 시간을 그녀는 우울증을 앓고 있단 것 과 결혼에 실패했단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는 게 두려워서 세상과 벽을 쌓고 지냈다는데…. 그런 그녀를 따뜻하게 받아준 어머니 조현숙 씨(66세). 이혼 후 어머니와 함께 지낸 지난 2년 동안 그녀는 어머니 덕분에 우울증에서 벗어나 예전의 예쁜 이재은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엄마, 나 너무 힘들어. 숨이 안 쉬어져. 내가 밖에 나가서 무언가를 시작한다면 다시 관심받고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엄마가 '너 아직 젊고 예쁜데 왜 못 해?'라고 말하더라고요. 그 말을 들으니까 하늘에서 빛이 내려오는 것 같았어요. - 배우 이재은 인터뷰 中 @ 이재은의 비밀 버킷리스트 어려서부터 바쁘기만 했던 이재은에게 지난 2년은, 난생처음으로 자신만을 위해 보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소풍이나 수학여행 한 번 못 가 본 게 한이 돼서 '제주도 한 달 살기' 등의 여행을 했고, '은행이나 주민센터 업무 보기' 등 남들 다 할 줄 아는데 본인만 못하던 것들을 익혔다. 그런 마음속 버킷리스트를 실행하는 것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재은이 최근 새롭게 도전한 것은 바로 목공예. 연예인이 되지 않았다면 목수가 됐을지도 모른다며 웃는 엉뚱한 그녀를 따라 목공 수업 현장을 함께 한다. 또한, 우울증으로 세상과 벽을 쌓고 지내던 그녀가 용기를 내어 사람들과 소통을 하기로 했는데…. 이재은이 선택한 방법은 바로 'SNS 1인 방송'. 하지만, 그녀가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전화 통화, 문자, SNS 메시지 정도뿐이라는데…. 과연 그녀가 SNS 방송에 성공할 수 있을까? 배우 이재은의 색다른 도전들! 그녀의 버킷리스트를 에서 함께 해본다. 예전의 저 같았으면 못했어요. 그런데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으려고요. 저 자신을 좀 믿고 목표를 향해서 열심히 달려가기만 하면 될 것 같아요. - 배우 이재은 인터뷰 中
2019.11.05
사람이 좋다
291회
지지 않는 별이 되다 - 배우 故 강신성일 편
█ 배우 故 강신성일 그가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남긴 말은? 1960년, 신상옥 감독의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故 강신성일. 한국 영화의 상 징 이자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대배우 故 강신성일이 11월 4일 돌연 별세했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임종에 대해 故 강신성일의 둘째 딸 강수화 씨는 아버지가 임종을 맞이하 기 전, 아버지의 투병 생활에 대해 털어 놓았다. 병세가 악화돼 옮긴 광주의 한 병원 에서 그는, 통증이 너무 심해져 이렇게 누워도 아프고 저렇게 누워도 아픈 상황에서 진통제에 의지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힘든 투병 생활을 했다고 한다. 항상 영화를 생각하며 자기 관리에 철저했던 故 강신성일에게 병들고 근육이 빠져 버린 몸은 자신의 모습이라고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다. 병원에 문병을 와서 발을 씻 겨 주겠다는 엄앵란의 말에 단호하게 거절했다는 故 강신성일. 그 이유는 바로 언제 나 건강하고 자기 관리에 철저했던 그였기에 노랗게 황달 끼가 온 몸을 보이기 싫어 서였다. 게다가, 발톱도 깎지 못한 채 앙상한 병자의 발은 보는 이마저 마음이 아플 정도라고 전했다. “아버지의 발을 봤더니 발톱도 못 깎고 살도 하나도 없고, 정말 병자의 발이었어요. 몸에 노랗게 황달기가 오더래요.” - 딸 강수화 인터뷰 中 영원한 청춘의 아이콘이자, 자신이 출연한 영화의 주인공 같은 인생을 살다 떠난 한국 영화계의 거성 故 강신성일의 마지막 폐암 투병 생활과, 가족들에게 마지막으 로 남긴 말이 를 통해 공개된다. █ 타계 4주 전, 부산 국제영화제에 참석한 故 강신성일의 미공개 영상 단 단독 공 개! 1964년 제 7회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시작으로, 백상예술대상, 대종상영화제, 청룡영화상 등 시상식에서 수상한 故 강신성일. 그가 살아생전, 마지막으로 참여한 공식 행사인 2018 부산국제영화제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에 서 최초 공개한다. “근육이 빠지고 아프다는 게 저로서는 굉장히 화가 났어요.” - 故 강신성일 인터뷰 中 부산 호텔에서 만난 故 강신성일의 모습은 레드 카펫 위에서처럼 건강한 모습이 아니었다. 두 명의 간호사를 대동한 채 양 팔에 진통제를 맞고, 목까지 전이된 암 세 포 때문에 목 보호대를 착용해야 하는 병약한 모습이었다. 그가 몸이 힘든 상태임에 도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것은, 이장호 감독과 약속한 내년 크랭크인 예정인 영 화 '소확행'에 대한 애정과 그가 사망했다는 소문을 불식시키기 위해 그가 건재함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죽을 때 까지 자기는 영화인이라 그랬거든요. 그래서 돌아가실 때도 필름을 맞춘다고 하시다가 돌아 가셨어요.” - 엄앵란 인터뷰 中 동행 취재 당시 故 강신성일은 자신이 기르던 개가 2개월 전 사망한 것이 주변 사 람 들에게 회자되다가 개가 죽었다는 것은 빠지고 '신성일이 투병 중에 사망했다'는 소 문이 났다는 것. 요양을 위해 영천 집을 비워 둔 사이 발생 한 웃지 못 할 해프닝이었 다. 한국 영화계의 거성, 故 강신성일이 타계 3주 전에 보인 진솔한 모습과 영화에 대 한 열정을 들여다본다. █ 가족들의 솔직 고백! 엄앵란과 딸이 말하는 나의 남편 강신성일, 나 의 아 아버 지 강신성일 1960년 배우 엄앵란이 신상옥 감독의 영화 '로맨스 빠빠'에서 본 신성일의 첫인상 은 '멋있다'였다. 1964년에 개봉한 정진우 감독의 영화 '배신'을 통해 연인이 된 두 사 람은 같은 해 11월, 부부의 연을 맺었다. 엄앵란은 영화 '맨발의 청춘'에 출연한 젊은 신성일을 보면 80세가 넘은 지금도 여전히 '참 잘 생기고 싱싱했다'고 감탄한다. 특 히, '깡패 역할의 액션이 마음에 든다'고 말하는 엄앵란은 여전히 故 강신성일에 대 한 애정을 내비쳤다. 그렇지만, 엄앵란에게 남편 신성일은 '집안에서 볼 수 없는 대 문 밖의 남편'이었다. “자서전을 썼을 때도 그것만 빼고 얘기 하라고 했는데 앞, 뒤 다 빼고 그 인터뷰만 나간 거예요. 대한민국이 뒤집혀서 어머니랑 저랑 3개월 동안 밖에 못 나갔어요. 사람들이 손가락질해서.” -딸 강수화 인터뷰 中 신성일, 엄앵란 부부의 별거는 오래되고 유명했고, 신성일은 2011년 출간한 그의 자서전에서 본인의 혼외 로맨스를 솔직하게 털어놓아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일까,.. 故 강신성일의 사망 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 중 하나가 '부인 엄앵란에게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전해라'였다고 한다. 한편 딸 강수화 씨에게 故 강신성일은 미워할 수 없는 든든한 아버지였다. 2016년 영천에 찾아 온 막내 딸의 발 젖는다며 80세 노년임에도 딸을 번쩍 업어 들고는 개울 을 넘었던 故 강신성일. 딸 강수화 씨는 개울가에서 자신을 업어 줬던 그런 아버지 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하며, 평생 건강한 채 그 자리에 계실 줄 알았던 아버지 가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 지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전했다. “아빠가 울지 마, 별거 아니다. 나는 이겨 낼 거야. 이러시는 거예요. 나는 영화 찍다가 세 번이나 죽을 뻔 한 고비도 넘긴 사람이야. 별거 아니야. 내가 이겨낼 거야. 내가 기적을 이뤄낼 거야. 그러셨거든요.” - 딸 강수화 인터뷰 中 한국 영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대배우이자 청춘의 아이콘이었으며, 미워하면서도 미워 할 수 없는 남편이자 아버지였던 故 강신성일과 그 가족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 기를 공개한다.
2018.11.13
사람이 좋다
167회
상남자 이동준의 사나이 가는 길
■ 진짜 사나이! '이동준' 연예계에서 '주먹'하면 빠지지 않는 절대 강자 이동준! 1분 만에 11명의 상대를 제압 했다는 이동준의 싸움 이야기는 이미 연예계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그의 무용담이 전해지며 자칭, 타칭 싸움의 1인자라는 그의 진짜 힘 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작년 겨울,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종 격투기에 도전! 자 신보다 29살이나 어린 격투기 선수를 한 방에 무너뜨리며 진짜 살아있는 전설임을 입증했다. 사실 그는 세계 선수권 대회 3연패에 빛나는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 출신! 1986년 아시안게임 선발전에서 심판의 오심 판정 논란으로 결국 은퇴를 결심했다. 그리고 같은 해, 주변의 권유로 시작한 배우 생활. 잘 생긴 얼굴 하나 믿고 나온 게 아니냐는 주변의 우려와 걱정에도 불구하고 데뷔 3년 만에 대종상 영화제 신인상을 수상하며 배우로 거듭났다. 운동만 하다가 나온 놈인데 충무로 영화 연기하려니까 연기 기본이 안 되어 있잖 아요. 대학에서 전공으로 배운 친구들보다도 '나는 실전에서 실기로 공부 해야겠구 나.' 그래서 공부하기 위해서 이 작품 저 작품 가리지 않고 섭외만 들어오면 무조건 했어요. -이동준 INT 태권도 선수에서 배우로 우뚝 서기까지 그의 든든한 버팀목은 6남매를 홀로 키워내 신 어머니였다. 중학교 시절, 간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워 준 마음의 안식처였다는데... 90세가 넘는 연세에도 정정하게 자식들의 곁을 지켜주 던 어머니가 작년 가을,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운동선수를 뒷바라지하며 갖은 마 음고생을 해야 했던 어머니는 그에게 더욱 특별한 존재였다. 6개월이 지난 지금, 아 직도 고향 청주를 지날 때면 어머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고향 집을 찾는다 는데... "진짜 에너지 충전되는 아들, 아들만 보면 생기가 돋고. 진짜 멋진 동생이에요. 근방에 오면 그냥 지나쳐서 가는 법이 없어요. 가서 엄마 얼굴 보고, 엄마하고 꼭 얘 기 나누고..." -누나 이해준 INT ■ 사나이를 무장해제 시키는 그 이름 '가족' 사나이 중의 사나이 이동준을 애교쟁이로 만드는 단 한 사람, 그의 아내 염효숙 씨 다. 대학교 1학년 때 첫눈에 반한 아내와 10년간의 열애 끝에 결혼에 골인한 순정마 초라는데...아내를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두렵지 않다! 사나이 체면도 내려놓은 채 귀여운 춤까지 선사한다는데... 아내가 더욱 사랑스러운 이유, 결혼 5년 만에 금쪽같은 아들을 선물해 준 고마움 때 문이다. 힘들게 완성된 가족인 만큼 가족은 사나이 이동준을 살아가게 하는 가장 큰 힘! 그런 귀한 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연기자의 길을 걷고 있다. 혹여 연기자 아 버지의 그늘에 가려질까 싶어 아들을 위해 잠시 연기 욕심까지 내려놓았다는데...태 어나서 단 한 번, 아들을 위해 울었다는 진짜 사나이 이동준! 사실 아들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남모를 이유가 따로 있었다? 바로 군대! 황혼의 나이, 예능을 통해 하게 된 생에 첫 군대 도전! 해병대를 제대한 아들 앞에서 당당해진 아버지의 뒤늦은 군대 이 야기가 밝혀진다. "남자답게 하는 것은 힘만 있어서 남자다운 게 아니거든요. 집에 와서는 두말 않 고 들어주는 남자. 우리 식구, 가족 이거밖에 없어요." -이동준 INT "아버지의 포스는 괜히 운동하셔서 나는 포스라던가 이런 런 아니라고 생각해 요. 아버지의 살아온 이런 것들을 보면서 제가 더 느끼는 바가 많죠." -아들 이일민 INT ■ 사나이 가는 길에 기죽지 마라! 불꽃 튀는 인생 후반전 2004년, 태권도를 알리고 싶은 열정으로 영화 제작에 나섰던 그. 무려 52억의 제작 비 투자, 스티븐 시걸이란 해외 톱스타까지 동원했지만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이 후 빚을 갚기 위해 홀로 부산의 밤무대를 전전하며 노래를 불렀다는데...한 때 도전 삼아 냈었던 트로트 앨범 덕에 원 없이 노래하며 빚을 갚았다. 태권도 선수, 연기자, 영화 제작자, 가수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고비마다 멈추지 않는 도전으로 일어선 불 굴의 사나이 이동준! 아들을 위해 연기인생의 숨을 고르고 있는 그에게 얼마 전, 동 갑내기 친구 설운도가 곡을 선물했다. 카리스마를 벗어 던지고 흥과 끼를 발산하며 전국 팔도를 누비고 있다는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사나이 가는 길에 자신감만 있으면 못할 것이 없다는 이동 준! 진짜 사나이 이동준의 불꽃 튀는 인생 후반전이 궁금하다! 지칠 줄 모르는 인생 의 진정한 파이터, 이동준을 에서 만나본다. "이동준을 보면서 실감을 해요. 굉장히 열심히 노력하고 아주 작은 방송이라도 마다않고 그렇게 지방에 다니는 거 보면 탤런트뿐만 아니라 가수로도 성공하리라고 봅니다. 왜냐면 저 정도 노력을 하면 저는 안 될 게 없다고 생각을 해요." -설운도 INT "과감하게 지를 때는 질러보고 그게 멋진 남자죠. '인생 뭐 있어 즐겁게 사는 거 지!' 곧 한국 나이로 6자 달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거예요. 나이 생각 하고 살면 안 돼요. 지금부터 노래 시작이니까 가수로서 돌진이에요." -이동준 INT
2016.03.26
섹션TV 연예통신
750회
1. 주간 키워드 사전
2014.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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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이종혁과의 가을 캠핑
2013.11.03
기분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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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5
충무로 별들의 축제! 대종상 영화제 - 제 51회 대종상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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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3
'열애인정' 문근영♥김범, “촬영장에서부터 예사롭지 않은 눈빛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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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3
이종혁 “소이현, 키스신 원해“ 키스신 희망 배우 언급 '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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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정, “이병헌한테 '창수' 시나리오 먼저 갔었다“ 솔직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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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3
4가지 키워드로 알아 본 제49회 대종상 영화제
기분 좋은 날 1514회
2012.11.05
[新가족기획] 월급의 반을 써? 부적에 빠진 남편
생방송 오늘 아침 1616회
2012.10.31
[백세만만세] 흙집 90세 부부의 버섯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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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31
[시청자제보] 남편과 시어머니가 버린 내 아기를 찾아요
생방송 오늘 아침 1616회
2012.10.31
[문화연예 플러스] '바람' 후속작 '짱구' 4월 개봉
진정성 있는 연기로 매 작품 한 축을 담당하는 배우죠. 정우의 첫 연출 데뷔작인 영화 '짱구'가 다음 달 개봉을 확정 지었습니다. 2009년 영화 '바람'을 기억하는 팬들에겐 남다른 의미가 될 예정인데요. "김정국 씨는 연기를 왜 하는 겁니까? " 매번 꺾이고 좌절해도 오직 배우라는 꿈 하나로 살아가는 주인공 '짱구'의 뜨거운 도전이 시작됩니다. 이번 작품은 지난 2009년 개봉한 독립영화 '바람' 이후 17년 만에 제작된 후속편인데요. 전작인 '바람'은 배우 정우가 고교 시절 경험을 토대로 직접 각본을 쓰고 주연으로 출연했고요. 그는 평단과 관객의 찬사를 받으며 제47회 대종상영화제에서 신인남자배우상을 거머쥐었습니다. 본인의 인생 캐릭터로 스크린 복귀에 나선 정우는 이번 작품에서 오성호 감독과 공동 연출자를 맡았습니다. 서른 중반에 접어든 주인공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청춘의 자화상을 담은 '짱구'는 다음 달 22일 개봉합니다.
뉴스투데이
2026-03-24
장유진 리포터
[인싸M] '한국영화' 자체였던 배우‥'큰 사람' 안성기
강대진 감독의 '마부', 김기영 감독의 '하녀', 이만희 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과 '만추',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 유현목 감독의 '순교자'와 '오발탄', 정소영 감독의 '미워도 다시 한번', 김수용 감독의 '안개' 등 한국영화는 1960년대까지 나름의 수작과 문제작을 잇달아 내놓으며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10월 유신' 이후 정부의 검열이 강화되면서 1970년대 한국 영화는 시들어갔습니다. 별들의 고향, 영자의 전성시대, 삼포 가는 길, 바보들의 행진, 겨울여자 등이 눈에 띄지만 한국영화는 1960년대와 같은 역동성을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당국의 검열을 피하기 쉬운, 이른바 '호스티스 영화'나 10대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하이틴 영화'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반공 영화'도 많이 제작됐습니다. 텔레비전 수상기 대량 보급으로 본격화된 'TV 시대'도 한국영화 쇠락에 한몫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1970년대와 80년대의 한국영화, 당시 이름으로 이른바 '방화(邦畵)'는 외국 영화보다 수준이 낮다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압도적 자본력을 앞세운 미국 할리우드 영화나 예술성 있는 유럽 영화가 훨씬 인기 있었습니다.'천재 아역'에서 '국민배우'로 배우 안성기는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천재 아역'으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출연한 영화가 70여 편에 이른다고 합니다. 1970년대 대학 진학과 군 복무 등을 하며 영화계를 떠났던 그는 1980년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에서 주인공 '덕배' 역을 맡아 좋은 연기를 보였습니다. 도시화와 개발의 시대, 심해지는 빈부 격차와 계층 갈등을 날카롭게 지적한, 사회 고발 성격이 강한 영화였습니다. 그는 이 영화로 대종상 신인상을 수상했습니다. 아역 배우가 성인 배우로 화려하게 귀환한 장면이었습니다. 다음 출연작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 '만다라'. 해탈을 갈구하는 구도승 '법운' 역을 맡았습니다. 한국영화로는 처음으로 베를린 영화제 본선에 초청됐고, 제27회 아시아·태평양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할 정도로 나라 밖에서도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안성기는 어수룩한 상경 청년 '덕배'에서 '구도승'으로 완벽하게 변신하며 연기의 폭을 넓혔습니다. 그는 이후 '어둠의 자식들', '적도의 꽃', '안개마을', '꼬방동네 사람들', '고래사냥' 등 소위 '사회성 짙은 영화'를 잇따라 선택했습니다. 서슬 퍼런 군사 정권의 시대, 배우로서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겁니다.'배우' 안성기, 1980년대 한국영화를 이끌다 그의 얼굴을 처음 본 건 길거리 담벼락의 영화 포스터였던 것 같습니다. '만다라'. 흔히 '3류 극장'이라고 얘기했던 서울 변두리 '재개봉관'의 선전 포스터였을 겁니다. 머리를 박박 깎은 젊은 남자의 얼굴이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희미하게 흑백 포스터에 인쇄돼 있었습니다. 1981년에서 1982년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는 신문 하단에 실렸던 영화 광고에도 심심치 않게 나왔습니다. 무릎과 무릎 사이,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어우동, 깊고 푸른 밤, 이장호의 외인구단, 겨울나그네, 내시, 황진이, 기쁜 우리 젊은 날, 달빛 사냥꾼, 칠수와 만수, 성공시대, 개그맨 등… 1980년대 이미 그는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배우가 됐습니다. 헤아려 보니 1980년대 흥행작과 문제작에 그가 출연하지 않은 영화가 없는 것 같습니다.1990~2000년대, 장르와 역할을 가리지 않다 1990년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개그맨, 남부군, 꿈,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베를린 리포트, 천국의 계단, 그대 안의 블루, 하얀전쟁, 투캅스, 태백산맥, 그 섬에 가고 싶다, 영원한 제국, 남자는 괴로워, 말미잘, 천재 선언, 헤어드레서, 축제, 박봉곤 가출사건, 퇴마록,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 아름다운 시절,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 코미디와 정치, 드라마, 역사, 판타지 등 그는 장르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2000년대 이후에도 킬리만자로, 무사, 취화선, 피아노 치는 대통령, 실미도, 아라한 장풍 대작전, 묵공, 한반도, 라디오스타, 화려한 휴가, 마이 뉴 파트너, 신기전, 7광구, 부러진 화살, 타워, 찌라시: 위험한 소문, 신의 한 수, 화장, 사냥, 사자, 아들의 이름으로, 한산: 용의 출현, 노량: 죽음의 바다 등에 큰 역, 작은 역을 마다하지 않고 출연했습니다.
심층
2026-01-10
전영우
'국민배우' 안성기, 향년 74세로 별세
◀ 앵커 ▶ '국민배우'라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안성기 씨가 향년 74세로 별세했습니다. 장례는 신영균 위원장을 필두로, 영화인장으로 치러집니다. 임소정 기자입니다. ◀ 리포트 ▶ 국민배우 안성기 씨가 오늘 오전 9시쯤 서울 순천향대 병원 중환자실에서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 광고 ##지난달 30일 자택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된 지 6일 만입니다. 지난 2019년 혈액암에 걸렸다 1년 만에 완치 판정을 받았던 고인은, 최근 암이 재발해 치료에 전념하며 복귀를 준비해 왔습니다. 지난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에 아역으로 출연하며 영화계에 발을 들인 고인은 69년간 170편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특히 1990년대 들어서는 '남부군', '하얀전쟁',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 다양한 영화에 출연하며 전성기에 올랐습니다. 연기력을 인정받은 고인은 1980년 '바람 불어 좋은 날'로 대종상영화제 신인상을 받은 이후, 국내 각종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과 연기상 등 40여 차례 수상했습니다. 2013년에는 대중문화예술 분야 최고 영예인 은관문화훈장도 받았습니다.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과 스크린쿼터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등을 지내며 영화계 권익 보호에 앞장서고,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친선대사 등으로 사회적 활동도 펼쳤습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며, 장례는 고인이 이사장을 맡았던 신영균예술문화재단과 한국영화배우협회가 주관해 영화인장으로 치릅니다. 원로배우 신영균이 명예위원장, 배창호 감독 등이 장례위원장을 맡고 배우 이정재·정우성 씨가 운구에 나설 예정입니다. MBC뉴스 임소정입니다.
2시뉴스
2026-01-05
임소정
'국민배우' 안성기, 향년 74세로 별세
◀ 앵커 ▶ '국민배우'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안성기 씨가 향년 74세로 별세했습니다. 장례는 신영균 위원장을 필두로, 영화인장으로 치러집니다. 임소정 기자입니다. ◀ 리포트 ▶ 국민배우 안성기 씨가 오늘 오전 9시쯤 서울 순천향대 병원 중환자실에서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난달 30일 자택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된 지 6일 만입니다. 지난 2019년 혈액암에 걸렸다 1년 만에 완치 판정을 받았던 고인은, 최근 암이 재발해 치료에 전념하며 복귀를 준비해왔습니다. 지난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에 아역으로 출연하며 영화계에 발을 들인 고인은 69년간 170편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특히 1990년대 들어서는 '남부군', '하얀전쟁',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 다양한 영화에 출연하며 전성기에 올랐습니다. ## 광고 ##연기력을 인정받은 고인은 1980년 '바람불어 좋은날'로 대종상영화제 신인상을 받은 이후, 국내 각종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과 연기상 등 40여 차례 수상했습니다. 2013년에는 대중문화예술 분야 최고 영예인 은관문화훈장도 받았습니다.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과 스크린쿼터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등을 지내며 영화계 권익 보호에 앞장서고,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친선대사 등으로 사회적 활동도 펼쳤습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며, 장례는 고인이 이사장을 맡았던 신영균예술문화재단과 한국영화배우 협회가 주관해 영화인장으로 치릅니다. 원로배우 신영균이 명예위원장과 배창호 감독 등이 장례위원장을 맡고, 배우 이정재·정우성 씨가 운구에 나설 예정입니다. MBC뉴스 임소정입니다.
정오뉴스
2026-01-05
임소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