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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라
1회
포화 속 생에 다시 없을 운명 같은 만남, 그리고 60년간의 그리움. 한국전쟁 참전병 슐레이만과 5살 소녀 아일라의 가슴 뜨거운 감동 실화! 1950년 한국전쟁에 파병된 슐 레이만은 칠흑 같은 어둠 속 홀로 남겨진 5살 소녀를 발견한다. 전쟁과 부모를 잃은 충격 속에 말을 잃은 소녀. 슐레이만은 소녀에게 터키어로 달이라는 뜻의 아일라라 는 이름을 지어주고 함께 부대로 향한다. 서로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 한 존재가 된 두 사람. 그러나 행복도 잠시, 슐레이만은 종전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 가라는 명령을 받게 되고, 아일라를 끝까지 지켜내기 위해 모두의 반대 속에 자신의 선택을 감행하게 되는데. 전 세계를 감동시킨 위대한 이야기가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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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스페셜
733회
푸른 눈의 병사와 고아 소녀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한 한국전쟁에 터키는 유엔으로부터 참전 요청을 받고 1만 5천여 명의 군인을 파병했다. 하지만 그중 7백여 명이 그 해 11월 27~30일 단 사흘 사이에 '군우리 전투'에서 목숨을 잃는다. 군우리 전투에서 퇴각하던 길, 참전용사 슐 레이만은 고아 소녀를 구한다. 부모를 잃고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있던 소녀는 자신 의 나이도 이름도 말하지 못했다. 소녀를 부대로 데려가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글을 가르쳐주며, 소녀에게 '아일라'라는 터키 이름을 지어주었다. 아일라는 슐레이만을 바바(아버지)라고 부르며 가장 참혹했던 전쟁터에서 가장 따뜻한 유년을 보내게 된 다. 그러나 전쟁터에서 맺어진 아버지와 딸의 인연은 일 년 만에 끊어지고, 서로의 생사를 확인할 길 없이 육십 년이 흘렀다. 지난 2010년, 한국에 두고 온 딸을 평생 마음에 두었던 아버지와 데리러 오겠다던 아버지를 평생 기다렸던 딸은 60년 만에 기적같이 다시 만났다. 그리고 7년이 지난 현재, 서로의 기억 속에만 잠들어 있던 아일라와 슐레이만의 놀라운 이야기가 터키 에서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는데.... 감동 실화의 주인공 아일라는 아버지와의 마지 막 만남을 위해 터키로 날아간다. “우리가 군우리 협곡에 있을 때, 하룻밤 새에 40만 명의 중공군이 참전하였어. 하룻 밤 사이에. 난리도 아니었어, 박격포 소리. 사람이 앞일을 알지 못하는 곳이었어. 북 한의 어디쯤인지는 알 수가 없어. 후퇴를 했으니까. 길에서 보니까, 배고픔과 고통, 추위에 떨고 있었지. 발에도 신이 없었던 것 같았어. 우리가 구하지 않았으면 아마 죽었을 거야” - 슐레이만 (92세, 6.25 참전 용사) 올해 72세의 김은자 할머니. 그녀에게는 특별한 아버지가 있다. 바로 참혹한 한국 전 쟁 한복판에서 자신을 거두어준 터키 파병군 슐레이만이다. 그는 전쟁고아로 이름 도 가족도 없이 남겨졌던 그녀에게 터키어로 '달무리'라는 뜻을 가진 '아일라'라는 이 름을 지어주고 보살펴주었다. “ 처음에는 이가 많아서 그랬는가. 머리를 빡빡 깎았어요. 빡빡 깎아 준 기억이 나 서 그 군인 아저씨들이 다 남자라고 놀리고 그랬어요. 포크질도 배웠죠. 포크 가지 고 한 손으로 하고 한 손으로는 칼 그런 걸로 해서 잘라서 먹고 치즈 같은 것도 해서 먹고 터기 글씨와 말도 가르쳐 주었어요” - 김은자 (72세, 아일라) 그녀는 그를 바바(아버지)라고 불렀다. 그러나 가족이 된 두 사람은 1년 만에 생이별 을 겪고 60여 년 동안 서로의 행방도 모른 채 그리움만 켜켜이 쌓아갔는데.... “ (바바를) 찾으려고 터키 대사관까지도 갔었는데 거기에서는 그게 마음대로 안 된 다고 이름도 모르고 그러는데 어떻게 찾느냐고 그 앞에 있는 사람들이 그러더라고. 두 번 갔다가 그냥 포기하고 왔어요. 찾고 싶어도 찾을 수가 없잖아 이름도 모르니 까 ” - 김은자 (72세, 아일라) “이게 나예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 어요” - 김은자 (72세, 아일라) 지난 2010년, 한국에 두고 온 딸을 평생 마음에 두었던 아버지와 데리러 오겠다던 아버지를 평생 기다렸던 딸은 60년 만에 기적같이 다시 만났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터키 용사를 기리는 행사 덕분에 한국에 그녀의 바바(아버지), 슐레이만이 온 것이 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피보다 진했던 정을 나눈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한 동안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 당연히 기억을 했지. 어떻게 생각을 안 했겠어. (딸에게) 너에겐 배다른 형제가 있 다고들 했지. 살아남길 바랐어. 잘 살고 있길 바랐어.” - 슐레이만 (92세 참전용사) 다시 한번 헤어짐 앞에 선 두 부녀. 푸른 눈의 아버지는 터키에 와서 함께 살자고 했 지만 김은자가 된 아일라에게는 한국에 가족이 있었다. 또 만날 것을 약속하면서 헤 어졌지만 어느새 7년의 세월이 흘렀고.. 92세 아버지의 생일에 즈음해 이스탄불로 날아간 아일라. 그사이 아일라는 터키에 서 유명인사가 되어있었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 취재진들이 줄을 서고 문화부 장 관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알고 보니 두 사람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던 67년 전의 기억 이 터키에서 영화로 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현장은 지난 67년 전, 자신을 터키 에 데려가기 위해 궤짝 안에 숨기던 그날을 재현하고 있었다. “터키로 간다고 해서 궤짝 같은걸. 짜는 걸 내가 봤어요. 큼직하게 짜면서 못 질도 하고 그랬거든요. 근데 그거로 뭐 할 거냐. 그랬더니 아일라 여기 넣어서 터키로 갈 거라고 그런 얘기하더라고 그래서 그때는 같이 간다는 마음에 좋아했는데” - 김은자 (72세, 아일라) 과거를 다시 만나는 아일라의 마음은 감사하고 한편으로는 착잡하다. 슐레이만은 떠 나고 그녀는 결국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한국에 살아낸 육십 년의 신산함이 한꺼번 에 밀려드는 까닭일까. 그녀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하는 것은 슐레이만 바바의 건강 이다. 터키에서 다시 만난 그녀의 아버지는 지팡이와 휠체어가 없이는 거동이 불편 한 92세 노인이 되었다. 가족과도 떨어져 이웃의 보살핌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함께 지낸 시간은 일 년. 그리워한 시간 67년. 이제 두 사람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되지 않 는다. “늘 기도합니다. 완벽한 삶을 살길 기원합니다. 한 인간으로서, 아버지로서 그렇게 생각합니다.” - 슐레이만 (92세, 한국전쟁 참전용사) “안 울려고 했는데, 자꾸 눈물이 나가지고.. 앞으로 한 번만 더 뵈었으면 하는 마음, 그 마음뿐이네요” - 김은자 (72세, 아일라) 아버지가 된 푸른 눈의 병사와, 딸이 된 고아 소녀 전쟁터에서 시작된 기적 같은 이야기는 67년째 계속되고 있다. 아버지를 다시 한번 만날 수 있을까 오늘도 그녀는 먼 바다를 바라보며 기도한다.
2017.03.06